Space Scripts- 공간의 문장들
A stage designer’s gaze on visually striking cinema. Exploring how space, silence, and structure shape emotion—on screen and on stage.
Oldboy – A Locked Room, A Horizontal Corridor, and a Designed Truth

썬더볼츠: MCU의 다음 시즌은 감정에서 시작된다

《썬더볼츠》는 MCU의 감정적 리부트를 예고한다. 디즈니+ 콘텐츠의 과잉으로 흔들린 MCU의 정체성, 그 대안으로 등장한 이 팀업 영화는 감정 중심의 새로운 시네마틱 흐름을 제시한다.*


 “영웅의 정의가 흐릿해질 때, 우리는 인물의 내부를 보기 시작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오랫동안 장르 영화의 문법을 재편해왔다. '아이언맨'으로 시작해 '엔드게임'으로 정점을 찍은 이 프랜차이즈는, 단순한 슈퍼히어로 세계를 넘어 문화적 사건이자 산업적 기획이었다. 하지만 '엔드게임' 이후 MCU는 분명히 다른 흐름을 타고 있다. 풍성해진 콘텐츠와 멀티버스의 개방, 끊임없는 신규 캐릭터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은 MCU의 동력에 균열이 생겼다고 느끼고 있다.


그 핵심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콘텐츠의 광범위한 확장이다. MCU는 디즈니+ 플랫폼을 기반으로 수많은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스핀오프 시리즈를 쏟아냈다. '완다비전', '로키', '팔콘과 윈터솔져'를 시작으로, '무슨 일이야 왓이프?', '미즈 마블', '문 나이트', '시크릿 인베이전'까지. 시청자는 MCU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영화만으로는 부족하고, 수십 시간의 시리즈와 애니메이션을 '의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MCU에 대한 접근성과 집중도를 현저히 떨어뜨렸다. 개별 영화는 더 이상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작동하지 않고, 마치 거대한 시리즈물의 일부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관객은 '이 장면이 무슨 의미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른 플랫폼의 콘텐츠까지 소화해야 하는 피로를 겪는다. MCU는 이야기의 깊이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단지 범위를 넓혔을 뿐이다. 그 결과, 개별 영화는 정서적 밀도를 잃고, 관객은 감정 대신 설정을 좇게 되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등장한 것이 《썬더볼츠*》다. 이 영화는 단순한 팀업 무비나 스핀오프가 아니다. 오히려 MCU가 감정의 원점으로 되돌아가려는 최초의 시도처럼 보인다. 더 이상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아닌, 자기 자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인물들. 그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MCU는 그동안 감춰온 감정적 깊이를 꺼내 놓는다.



1. '정의'가 아닌 '상처'로 결속된 팀

《썬더볼츠*》는 전통적인 영웅서사로부터 한참 떨어진 위치에서 출발한다. 이 팀은 자발적으로 뭉친 이상적 집단이 아니다. 국가와 시스템, 실패한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소환된 이들이다. 각자의 상처와 죄책감, 통제 불능의 힘을 지닌 채로, '임무'라는 명목 하에 한 자리에 놓인 인물들이다.

옐레나 벨로바는 블랙 위도우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고, 윈터 솔져는 과거의 피의 기억 속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감정을 잃은 인간처럼 살아간다. 센트리는 더 깊은 내면의 폭력성을 억누르며 자신조차 두려워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들은 악도 선도 아니다. 단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팀워크는 전통적인 협업의 감동이 아니다. 충돌과 회피, 억제된 감정의 교차 속에서 우리는 '팀'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통의 목표가 아닌 공통의 결핍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 무채색 톤의 시각적 설계와 공간의 감정화

《썬더볼츠*》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시각적 톤의 변화다. MCU의 전통은 밝고 선명한 색감, 과잉된 비주얼 스펙터클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공식을 거의 철저히 거부한다. 카메라는 낮고, 어둡고, 흔들린다. 배경은 회색 빛의 창고, 비 내리는 골목, 불 꺼진 옥상이다.

공간은 장르적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정서 상태를 반영하는 무대로 기능한다. 이는 무대디자인의 개념과도 닮아 있다. 감정이 먼저 있고, 공간이 그 감정을 구조화한다. 센트리가 두려움에 떨며 앉아 있는 좁은 벙커, 옐레나가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텅 빈 방, 이 모든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내면의 조각들이다.

그 결과, 이 영화는 관객에게 설명하는 대신, 느끼게 만든다. 구조와 미장센을 통해 감정이 스며들고, 인물의 침묵이 관객의 감각을 불러낸다. 이건 MCU에서 보기 드문 감정적 설계다.



3. 서사의 중심은 갈등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성

기존 MCU 작품들은 갈등의 발생, 충돌, 해결이라는 구조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썬더볼츠*》는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등은 제자리에서 반복되고, 인물들은 극복보다는 인정을 통해 나아간다.

영화는 대결보다 정서적 마비와 싸운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보다, 왜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은 현재 MCU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와도 닮아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거대한 악에 흥분하지 않는다. 타노스를 넘는 존재가 등장해도, 그 파괴력은 정서적으로 소모되어버렸다. 대신 관객은 작고, 조용하며, 내부로 침전하는 이야기에서 감정의 생동을 발견한다. 《썬더볼츠*》는 그 감정의 진폭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4. MCU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가?

《썬더볼츠*》는 단지 실패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품은 MCU가 다시 관객의 감정 곁으로 다가가기 위한 리부트의 신호탄이다. 더 이상 강한 영웅의 등장보다는, 흔들리는 인간의 이야기불완전한 공동체의 구성이 중심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톤의 변화가 아니다. MCU가 자신들의 세계관을 어떻게 유지하고 확장할지를 결정하는 방향성의 선언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점점 더 감정 기반의 미시서사심리적 구조물로서의 공간 활용, 그리고 회복보다 포용에 가까운 결말들로 나아갈 것이다.


5. 결론: 마블은 다시 감정을 믿기로 했다

《썬더볼츠*》는 MCU에게 있어 하나의 감정적 회귀다. 영웅은 더 이상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이야기는 더 이상 선/악의 구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린 아직 이 세계를 믿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파괴나 승리가 아니다. 부서진 채로도 함께 있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새로운 영웅의 이미지다. MCU가 이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비록 세계관은 좁아질지언정 이야기는 더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 깊이를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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